취향 찾기
어색한 사이에 좋은 몇 가지 마법의 말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취향'에 대하여 묻는 것이다. '영화 좋아하세요?' '무슨 영화 좋아하세요?' '인생 영화가 있나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질문들이다. 이런 질문들이 특히 처음 본 사이에 어색하지 않은 이유는, 그 사람을 알아가기 위한 질문이라는 것을 말하는 이도, 듣는 이도 함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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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취향을 알아가려 어색한 질문을 꺼내는 사람도 고역이지만, 대답하는 사람이 더 고역인 경우가 있다. 내가 대체 좋아하는 게 뭐지? 영화? 요리? 운동? 취향을 이해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이해하는 과정의 일부분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즐거운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것이다.
어렸을 때에는 서로의 취향 이야기를 하는게 어렵지 않았다. 놀이터에 마구 달려가서 너 몇 살이야? 어 나랑 동갑이네? 그럼 너 파워레인저 매직포스 봐? 까지 이어지면 5분 내에 떡볶이에 오뎅에 피카츄까지 같이 사 먹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세상 인싸가 여기 있었다.
그렇지만 최근 들어 취향을 묻는 질문에 쉽게 대답하기 어려워졌다. 누군가 취미를 물었을 때 그냥 이것저것 해요.라고 대답을 얼버무렸다.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었기 때문일 거다. '아, 글 쓰는 걸 좋아하기는 하는데.. 영화도 자주 보긴 하는데.. 감독 이름도 모르고 장르 특성도 모르는데.. 그게 취미인가?'
취미더라. 그리 어렵지 않아도 되고, 엄청 매니악하지 않아도 되더라. 그냥 요새 궁금한 것, 좋아할 마음이 있는 것이 곧 취향더라. 취향의 사전적 의미는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또는 그 경향'이다. 자신을 알아가는 것에 너무 거부감 느끼지 말 것. 스스로에게 더 질문할 것. 자주 관찰할 것. 이것이 취향을 가지기 위한, 나를 이해하기 위한 기본자세다.
개인적인 기준일지도 모르겠지만, '요새 뭐 하며 지내세요?' 질문에 확실히 '저도 잘 모르겠네요..'라고 말하는 사람보다 '저는 요새 마블 영화를 많이 봐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 융 이론을 많이 아는 건 아니지만, 인생은 자신 스스로를 알아가는 여정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죽기 전에 나는 누구인가를 내 인생은 어떠했는가를 한 문장으로 요악할 수 있길 바란다.
멋진 묘비명을 적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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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마블 영화 보셨어요?' 취향의 또 다른 순기능은 공유에 있다. 상대의 질문에 '아, 많이 알지는 못하는데 평소에 궁금했어요!'라고 말하는 순간 둘만이 공유하는 이야기의 공간이 생긴다. 이런 대화법을 가진 사람들이 분위기를 편하게 할 줄 아는 것 같다. 물론 그냥 대화를 끊지 못해서 하는 말일 수 있으니 문맥은 알아서 판단하길 바란다. 나만 재미있을 수 있단 말이다.
그래서 더 좋은 경우는 상대가 '와. 전 캡틴 아메리카가 최애예요. 헤일 하이드라!'라고 말하는 거다. 모든 시리즈에 원작까지 다 훑고도 스핀오프까지 이야기하는 절친을 얻을 수도 있다. 이야기 공간의 보이지 않는 벽이 상당해서, 바로 옆 테이블의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 경험을 해 본 적이 있는가? 자신도 모르게 상대방 쪽으로 상체가 기울어지지는 않았는지. 나란히 앉았다면 무릎이 향하지는 않았는지.
어쩌면 취미는 자석같은 걸지도 모르겠다.
철가루를 가득 뿌려서 그 이끌림의 흔적을 보면 재미있을 텐데!
'빵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 선해' 어느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먹을 것을 좋아하는 코미디언이 한 말이다. 같은 것을 좋아하는 것만으로 그 사람에게 호감이 생긴다니. 드라마를 보면 같은 동아리에서, 같은 회사에서, 같은 소모임에서 사랑이 시작되는 게 순 뻥은 아니다.
'어쩌다 좋아져서', '궁금해져서', '제대로 해보고 싶어서'라는 말로 입단 신청서를 내는 수많은 모임의 원동력도 다 '취향'에 있다. 요즘 온라인 클래스도 성행하던데. 확실히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많이 집중하고 있는 것 같아 좋다. 인터넷 클래스로 스페인어 모임에 들어갔다는 친구에게 무슨 바람이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대답은 놀랄 만큼 간단했다.
'그냥!'
확실히 취향의 힘은 생각보다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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